아이들이 극우에 물들고 있다
아이들이 극우에 물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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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원 기자]
최근 '교실의 극우화'를 주제로, 교사로서의 경험을 글로 정리하고 있다. 특히 남자 고등학교에서 나타나는 극우화 현상은 심각하게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아이들 사이에서는 '외노자(외국인 노동자) 닮았다'는 말이 모욕으로 통용되고, '너 페미지'라는 말이 욕설처럼 쓰이는 현실이다.
쉬는 시간, 교실과 복도를 지나다 보면 들리는 말의 팔 할이 욕이다. 이제 욕설은 친근함의 표현이 됐다. 불러다 주의를 주면 "욕이 안 들어가면 대화가 부자연스럽다"며 키득거린다. 씨X, 개XX, 존X 따위는 이젠 감탄사나 부사일 뿐, 욕이 아니라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특정 대상을 표적으로 삼는 혐오 표현이 섞여야 진짜 욕처럼 느껴진다. 좌빨, 짱깨, 쪽발제일은행 적금
이, 병X, (장)애자, 틀딱, 한녀 등 같은 단어를 비유적으로 섞어야 욕설의 '수위'가 올라간다고 여긴다. 욕에도 내성이 생겼는지, 혐오 표현의 강도는 나날이 세지고 있다.
친구들 간 대화에서 혐오 표현이 난무하고, 그런 말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게 웃고 넘기는 모습은 자못 섬뜩하다. 지난 대선 후보자 토론 방송에서 나온 '젓가락 발언'에계약직 1년
대해서도 "그게 왜 문제냐"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그저 언론의 과장된 반응쯤으로 여긴 것이다.
스마트폰, 혐오를 유통하는 일상 장치
1년거치
▲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말이 요즘 들리지만, 이는 사후약방문에도 못 미친다. 가짜 뉴스나 극우 유튜브를 분별하는 능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시급한 건 아이들의 일상에서 스마트폰을 일정 시간 이상 떼어놓는 일이다(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챗GPT로 제작자동차 할부구입
한 AI이미지입니다).
ⓒ 챗GPT
이 모든 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 범람하는 자극적이고 저질스러운 콘텐츠에 중독된 결과다.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요즘 아이들은 주로 SNw저축은행
S를 통해 소통하며, 10명 중 4명은 스마트폰 중독에 가까운 과의존 위험군에 속한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친구는 필요 없다'고 말하는 세대다.
스마트폰 중독이 아이들의 정서 발달에 치명적이라는 연구 결과는 이미 차고 넘친다. 그 안에서 접하는 혐오 표현들은 10대들의 가치관을 완전히 뒤흔들 정도로 위험하다. 일상 언어9월현대m포인트사용처
의 오염이 그들의 동심과 양심까지 더럽히고 있는 것이다.
"이게 다 윤석열 때문이야."
아이들의 되바라진 말과 행동에 혀를 끌끌 차던 한 동료 교사의 푸념 섞인 농담이다. 대통령부터 극우 유튜브에 빠져 있는데, 애꿎은 아이들만 탓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처럼, 대통령에서 유치원생까지 서울제2금융
모두 극우 유튜브에 빠진 나라가 되어버렸다고 그는 한탄했다.
공교육까지 침투한 극우의 손길
이런 와중에 물 만난 고기처럼 미쳐 날뛰는 어른들도 적지 않다. 2030 청년층을 '자유 우파'로 키우겠다며 공교육 현장에까지 침투한 '리박 스쿨'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민간 자격증을 남발하며 청년 극우 활동가를 양성했고, 정부와 서브프라임대출
지방자치단체 교육 사업에까지 손을 뻗쳤다. 최근에는 극우 초등 역사 교과서를 집필하려는 시도까지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따지고 보면 극우 유튜브의 범람, 혐오 표현의 일상화, 극우 단체의 준동 등은 극우화의 '현상'일 뿐, 근본적인 원인일 순 없다. '교실의 극우화'를 탓하기 전에, 왜 아이들이 그렇게 쉽게 극우 유튜브에 빠져들고, 혐새희망홀씨 대환
오 표현에 무감각해졌는지를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 일부 아이들은 극우 단체 활동을 그저 '알바'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몇 해 전부터 아이들의 등하굣길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예전처럼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등교하는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무선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걷는다. 인사를 건네도 다시사신예수님
반응이 없다. 귀를 막고 있으니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것이다.
이로 인한 안전사고 위험도 크다. 차량의 엔진소리는 물론 경적조차 듣지 못해 사고 직전까지 가는 일이 허다하다. 하지만 그들은 다음 날에도 변함없이 이어폰을 끼고 등교한다.
믿기 어려울 수 있지만, 요즘 아이들은 친구와 스마트폰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십중팔구 스마트폰을 고른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수백 명의 친구를 사귈 수 있다고 당연하게 말한다. 친구와의 만남보다 손안의 디지털이 주는 즐거움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노잼은 악'이라는 세계관 속에서
아이들의 하루 일과에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없다. 공부하느라 바빠 잠잘 시간도 부족한 마당에, 친구들과 모여 뛰어논다는 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가 됐다. 학교와 학원, 스터디카페를 전전하는 빠듯한 일상 속에서 스마트폰을 '베프'라 부르는 아이들도 있다.
어릴 적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자라난 이들은, 이제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것조차 어색해한다. 함께 있어도 각자 스마트폰만 바라본다. 심지어 같은 공간에서 대화를 SNS로 주고받기도 한다. 이걸 두고 'MZ 세대의 문화'라며 웃어넘긴다.
아이들이 공부, 놀이, 휴식, 소통 등 모든 일상을 스마트폰과 함께하는 현실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백약이 무효다. 친구들 간 대화는 이미 단절되었고, 스마트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책가방엔 이제 책과 공책 대신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들어 있다.
이른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말이 요즘 들리지만, 이는 사후약방문에도 못 미친다. 가짜 뉴스나 극우 유튜브를 분별하는 능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시급한 건 아이들의 일상에서 스마트폰을 일정 시간 이상 떼어놓는 일이다. 스마트폰 사용을 제어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교육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교사의 눈으로 볼 때, 아이들의 스마트폰 중독률은 사실상 100%에 가깝다. 그들이 보는 콘텐츠의 세계는 철저한 경쟁 논리로 돌아간다. 눈길을 사로잡지 못하면 곧바로 다음 콘텐츠로 넘어간다. 재미없으면 끝이다. 그들에겐 '노잼'이 곧 '악'이다.
정보의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게 콘텐츠의 유일한 기준은 '재미'다. 재미만 탐닉한 나머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을 상실한 채 사회적 약자를 조리돌리는 혐오 콘텐츠에 빠져드는 것이다.
기술은 교육의 본질이 아니다
디지털 교과서를 모니터에 띄우고 아이들이 각자 스마트 기기로 수업에 참여하는 방식은 교육이라 하기 어렵다. 효율적이지도 않고, 선진적이지도 않은 그저 보여주기식 수업에 불과하다. 기술이 교육의 본질을 대체할 수 있다고 믿는 건 위험한 착각이다.
조금 더디더라도, 친구들과 선생님이 함께 둘러앉아 책을 읽고, 서로 묻고 답하며 숙의하고 토론하는 수업이야말로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진짜 교육이다. 운동장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체육 시간도 반드시 확대해야 한다. '멍 때리는' 여유를 즐길 줄 아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교육 개혁이다.
지난 정부는 느닷없이 디지털 교과서를 밀어붙이며 예산만 낭비하고 끝났다. 이제 새 정부는 인공지능을 앞세운 교육 혁신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은 결국 '마음의 일'이다. 최첨단 기술을 먼저 앞세운 결과가 오늘날 '교실의 극우화'라면, 과연 그것이 억측일까.